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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말)



어린 사르트르는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내용모를 책들을 읽으며 신동인 척 연기한다.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인양 아무말이나 해대면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제멋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어느 날, 어른들끼리의 대화를 엿들으며 자신에게 대하는 것과는 다른 말투와 분위기를 느낀다. 어린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연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는 그 자신의 행위들이 한낱 시늉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되는 것을 느낀다. 어린 사르트르의 배역은 그저 어른들의 상대역에 불과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 아이의 비위를 맞춰주었으며, 아이가 소란을 피우는 행위는 할머니의 심술의 구실이 되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존재는 그저 불화와 화해의 우연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모두는 존재하고 있지만 자신은 존재되고 있다고 느낀다.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부터, 사르트르는 그 작은 글자들이 단단한 물질처럼 굳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허상의 실상화였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거울 놀이밖에는 없었다.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타자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느껴보려면 누구든지 나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사르트르는 글쓰기가 자신을 해방시켜줄 도구인 동시에,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이라는 모순을 느낀다. 글쓰기를 통해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타인의 필요와 기대에 얽매여있음을 인식한다. 결국 그는 자유는 타인으로부터의 독립만으로는 불가능하며, 타자의 기대와 필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책임 또한 필연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는 이제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스스로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선택하고,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도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 복합적인 자유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고독한 행위이다.

사르트르는 타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며, 그것이 극복 불가능한 조건일지라도 인간은 그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실존주의 철학을 구체화한다. 그가 말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선언은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