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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yth of Sisyphus (시지프 신화)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중대한 과학적 진리를 파악하고 있던 갈릴레이는 그 진리의 주장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즉시 그 진리를 너무도 쉽게 부인해 버렸다. 그것은 화형을 감수해야할 정도의 진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와 태양 중 어느 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 하는 것은 정말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반면에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죽는 것을 본다. 그런가 하면 역설적이게도 자신에게 살아갈 이유를 부여해주는 이념 혹은 환상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살아갈 이유라는 것은 동시에 목숨을 버릴 훌륭한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인 것이다.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무대 장치가 붕괴되는 일이 있다. 다만 어느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권태는 의식을 깨워 일으켜 우리의 부조리를 인식케 한다. 부조리의 시간 끝에 그 결과로서 자살 혹은 원상복귀가 나타난다. 권태 그 자체는 어딘가 좀 메스꺼운 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야 마땅하다. 모든 것은 의식에 의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관심이 모든 것의 기원인 것이다.

부조리의 인간은 자신이 지금까지 자유의 전제에 매인 채 그 환상을 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그에게는 속박이었던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상정함으로써 그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요청에 순응했고 그리하여 자유라는 강박의 노예가 되었다. 나의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짐으로써, 나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리하여 삶에 의미가 있다고 시인한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스스로를 울타리에 가두는 것이다. 부조리의 인간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동과 선택을 스스로 규정짓는다. 이는 내면의 강요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며 그렇게 그는 자유를 향한 집착이 오히려 새로운 속박의 형태였음을 자각한다.

신들은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유 있는 생각이었다. 시지프는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한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이유는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오늘 날의 노동자는 그 생애의 그날 그날을 똑같은 작업을 하며 사는데 그 운명도 시지프에 못지 않게 부조리하다. 프롤레타리아이자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넓이를 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지프는 바위를 향해 돌아가면서 무용한 행위들의 연속을 응시한다. 보기를 원하는 장님 그리고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장님인 시지프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