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ntspace.

雪国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ㅡ」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려 덮고 있었다.


설국은 그 내용이 담고있는 이미지를 힘들이지 않고 상상할 수 있는 묘사의 풍부함을 갖고 있다. 계절의 변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자연의 작은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묘사되며, 이는 작품을 단순히 읽는 것을 초월하여 장소에의 경험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한다. 이러한 풍경의 자세한 묘사와, 등장인물의 심신 상태에 따라 같은 풍경이 달리 표현된다는 점은 인물의 내면을 그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으로 긴밀하게 엮어 확장시킨다.

우리 내 일상에서도 심신의 상태에 따라 환경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쉬이 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설국이 상당히 재밌게 읽힌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정이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이번이 두 번째로 읽은 것인데, 첫 번째로 읽었던 기억은 25살 무렵, 대학교 2학년 즈음 이었던 것 같다. 수업 중 교수님이 설국의 도입부를 들려주었을 때 감탄했던 기억과, 책을 완독한 뒤 별다른 감흥 없이 책을 덮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25살과 31살의 나는 무엇이 다르길래, 같은 책이 이토록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단순한 시간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사이에 변화한 나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내 마음의 상태가 영향을 미쳤겠지.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뭐가 달라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마무라가 느꼈던, 도쿄와 니가타를 잇는 조에쓰선을 타고 시미즈 터널을 통과하며 바라본 겨울이 궁금해졌다.

니가타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