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대나무 숲이 있다. 친구와의 대화가 그러하고, 연인과 가족의 품이 그러하며, 카페의 구석자리가 그러하다. 혹은 음주와 흡연 속에서 찾는 이도 있을 것이며,
어쩌면 아주 모르는 타인에게서 그러한 안식을 기대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곳은 배설의 영역인가, 해소의 장소인가?
그것은 위안이 될 수 없다. 그곳에는 배설이라는 쾌락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볼록한 혹을 대신 잘라줄 날붙이에 손을 대는 것이다.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이제는 살을 도려내야 한다. 상처가 깊어진다.
듣는 것은 때로는 흡수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부로의 발산이기도 하다.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되새기고, 반응하고, 비교한다.
듣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배설이다. 그렇게 배설된 무언지 모를 것은 안에서 썩어가겠지.